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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3 23:24

100주년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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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믿음을 가졌을까? 또 신앙생활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어느 여성도의 회고록에서 그 당시 모습을 엿볼수 있다.

'꽃피는 아침, 달돋는 저녁, 날마다 애통함을 금할 길 없을새 하루는 도를 전하는 어떤 부인의 권함을 입어 다듬은 옥색 옥양목 쓰개치마를 오긋이 숙여쓰고 그 부인의 뒤를 따라 남대문 안 상동예배당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

'나는 19세에 청상과부라는 끔찍스러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일이 어쩔도리가 없게 되었다 나에게는 흥 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영원히 영원히 있을리가 없다, 이때에 나는 맘을 결하야 글 배우기를 힘쓰고 교회당에 울리는 종소리 흘러 나오는 찬미가를 들을때마다 나의 외로운 영은 기뻤으니 내가 처음으로 다니든 교회는 상동예배당이었으며 어린이들을 모으고 조선언문을 가르쳤었다.' '한번 예배당에를 가서 하나님께 단단한 맹세를 한 뒤에는 전일의 비애와 고독이 다 어디로 사라지고 앞길에 희망과 광명만 있을 뿐이었다. 눈을 뜨면 천당이 황연히 보이고 귀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이 순순히 들리는 듯하였다. 더구나 동무 신자들과 같이 찬미도 하고 풍금도 치며 놀때에는 세상의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천국에서 사는것 같았다. '

갑오개혁 이후 여성들도 외부출입이 가능해 졌지만 얼굴 가리개였던 장옷, 쓰개치마, 너울을 덮어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은 기생이나 천민 외에는 없었다. 당시 조선을 방문했던 비숍 여사는 '조선의 여행지 어떤 곳에서도 나는 여자들이 그의 어머니의 방에서 무심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제외하고서는 여섯살 이상의 소녀를 거리에서 본적이 없다' 고 했다. 유독 여성에게 혹독했던 조선사회의 단면이다. 내외법이 퇴색한 것은 1920년대 부터이지만 지방에서는 1920년대 중반까지도 여전히 여성들은 외출 한번하려면 치마쓰고 종을 앞세우고 남의 눈을 피해 죄인처럼 다녔다. 복음이 조선 여성에게는 빛 그 자체였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자에게 해방을! 억눌린자에게 자유를! 고통받는자에게 평안을! 교회 청년회와 선교학교를 중심으로 사회개혁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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